미국 정부, 그 거대한 조직은 어떻게 돌아갈까?
백악관의 결정이 현실에서 정책으로 구현되기까지, 그 중간에는 ‘고위공무원단(Senior Executive Service, SES)’이라는 핵심 그룹이 있다. 이들은 말 그대로 정책의 실무를 책임지는 ‘행정의 프로’ 집단이다. 대통령이 정한 방향을 실제로 실행하고, 연방 기관의 운영을 총괄하는 사람들이 바로 SES다.
미국의 SES 제도는 단순한 고위공무원 체계가 아니다. 1978년, ‘공무원 개혁법(Civil Service Reform Act)’을 통해 탄생한 이 제도는 기존의 경직된 공직 체계를 혁신하고, 성과에 따라 보상받는 책임 있는 행정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단순히 오래 일했다고 승진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성과와 능력 중심의 고위공무원 제도를 미국 행정에 도입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미국 SES 제도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며, 공직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자세히 들여다보려 한다. SES는 단지 행정 조직의 일부가 아니라, 미국 정부 정책이 실현되는 바로 그 현장에 서 있는 이들이다. 그리고 이 제도는 단지 미국만의 것이 아니라, 한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고위공무원 인사 제도를 고민할 때 참고하는 하나의 모델이기도 하다.
이제 미국의 SES 제도가 어떻게 정책 실무의 중심축으로 기능하고 있는지, 그 구조와 철학을 본격적으로 파헤쳐보자.
✍️ 정책 실행의 엔진, 미국 SES 제도의 모든 것
1. 제도의 탄생: 왜 SES가 필요했을까?
1970년대 미국은 행정부 내부의 관료주의와 경직성으로 인해 정책 집행의 효율성에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었다. 특히 중간 관리자와 고위 정책 결정자 간의 의사소통 단절, 성과 없는 연공서열 중심의 인사 운영, 그리고 정치적 중립성 약화 등이 주요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78년 '공무원 개혁법(Civil Service Reform Act)'이 제정되면서, 고위공무원단(Senior Executive Service, SES)이 창설되었다. 카터 대통령은 “능력 있는 자에게 통치하게 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묻자”는 철학 아래, 능력 중심의 고위 공직 체계를 만들고자 했다.
2. SES 직위의 유형과 임용 구조
SES는 기존 GS 16~18급의 공무원과 대통령이 임명하되 상원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고위 공무원들을 하나로 통합한 제도이다. 이들의 업무는 대부분 정책의 기획·조정·운영에 해당하며, 정책 실무와 관리감독의 최전선에서 일한다.
✅ SES 직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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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er Reserved Positions: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이 중시되는 분야(준사법적 업무, 감사, 계약 관리 등)에서 사용되며, 오직 경력직 공무원만 임용될 수 있다. -
General Positions:
정치적 성향을 고려할 수 있는 직위로, 경력직뿐 아니라 비경력직, 임시직 공무원도 임용 가능하다. 다만, 비경력직은 SES 전체 인원의 10%, 임시직은 5%를 넘을 수 없다.
이러한 구조는 고위공무원의 전문성과 정치적 유연성 사이의 균형을 고려한 제도 설계라고 볼 수 있다.
3. SES의 보수 체계: 성과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
SES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보수 체계가 성과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 기본급:
2025년 기준으로 SES는 ES I에서 ES VI까지 6개 등급으로 나뉘며, 각 등급별로 다음과 같은 기본급이 적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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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증된 성과 시스템 적용 기관: $150,160 ~ $22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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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적용 기관: $150,160 ~ $207,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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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평가 성적에 따라 기본급의 5~20% 수준의 보너스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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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성과 중심으로 인센티브를 부여
✅ 대통령 표창(Presidential Rank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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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inguished Rank: 기본급의 최대 35% 일시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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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itorious Rank: 최대 20% 지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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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이 제도는 경력직 SES만 대상이며, 대통령이 직접 승인하는 명예 포상제도이다
이처럼 미국 SES 제도는 단순히 ‘오래 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니라, 성과가 탁월한 사람에게 확실한 보상을 제공하는 인센티브 중심 체계다.
4. 성과 평가와 책임행정
SES는 공직 사회 내에서 흔치 않게 신분 보장이 제한적이다. 이는 단순한 해고가 아니라 ‘성과 없는 고위직에 대한 책임’의 철저한 구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 평가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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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성과 평가를 받으며, 5단계(Level 1~5)로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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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기준: 리더십, 정책 집행 성과, 조직 운영 능력 등
✅ 면직 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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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5년간 2회 최하등급(Level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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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3년간 하위 2개 등급(Level 1~2)을 두 번 받을 경우
즉, 고위직이라도 실적이 없다면 면직될 수 있다는 원칙 아래, SES 제도는 책임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인사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정책의 무게를 감당하는 사람들, SES가 말해주는 것
‘공무원도 성과로 말한다.’
미국의 고위공무원단 제도인 SES(Senior Executive Service)는 이 명제를 행정 현실에 적용한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단순히 높은 자리에 있는 관리자가 아니라, 행정부의 정책이 현실에서 구현되도록 하는 실질적인 실행자이자 전략가다. SES는 행정에서 "정치와 실무 사이"라는 가장 까다로운 위치에 서 있으면서도, 능력과 실적으로 평가받는다.
이 제도는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
첫째, 고위공무원의 자격은 직급이 아니라 능력과 책임이라는 점이다. 오래 근무했기 때문이 아니라, 정책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데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
둘째, 신분이 아닌 성과를 기준으로 보상과 책임을 다하는 구조가 고위공무원의 전문성과 동기를 유지하는 핵심임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SES 제도는 ‘성과와 책임의 균형’이라는 행정학의 오래된 이상을 실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조직의 위에서 명령만 하는 리더가 아닌, 정책 현장에서 방향을 잡고 결과로 증명하는 전문가.
이들이 바로 미국 SES의 진짜 모습이다.
우리나라 공직사회도 이처럼 공정하면서도 유연한 인사 운영이 가능할까?
SES 제도는 단지 미국만의 제도가 아닌, 각국이 책임 있는 공직사회를 설계하기 위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음을 말해준다.